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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글

아버지 등골 빼먹은 기억

                  아버지 등골 빼먹은 기억

            글 제목이 무시무시 한 것처럼   3.1빌딩을 보면서  떠오르는 아픈 기억이 있어

 이 지면을 할애해 몇자 적어본다.

            난 아버지가 군인장교인 관계로   잦은 인사이동과  동생들이 많아

 지금 명칭인 세종시 소정면(구 연기군)의  할머니댁에 초등학교 3학년 1학기부터 맡겨져 버렸다.

            120명정도되는  국민학교(초등학교) 같은 학년에서의 학업 성적은 늘 상위권이었고

당시 중학교 입학은 시험전형이었으나 학교에서나 가족 모두 천안중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무난히 합격하리라고 말하였고, 믿었는데  중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지고 말아 

천안에 있는  시골 중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할아버지와 가족 모두의  바램대로 고등학교는  서울 용산구에 있는 군인학교

(각군사관학교와, S,Y,K대학에 많은 합격자를 내고 있는 학교였음)에 응시하였으나

120명 모집에  내 수험번호가 1200몇번으로기억되는 약 20:1 의 경쟁률을 뚫기는

시골학교 출신인 나로서는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었다.

         시험에  낙방하자 아버지께서는 즉시 종로2가 화신백화점뒤 대일학원옆에 있는

3.1학원 종합반에  입학시켜 11개월간 이 학원 종합반을 다니게 하였다.

        학원 다닐때  내 자리에서 보면 당시 서울에서 최고층인 3.1빌딩이 보였고

        한달수업료가 1만여원으로, 당시 시골중학교 한분기 수업료가 4,000원 정도였고

면서기(현재 지방공무원 9급) 월급이 20,000원이 안됐다고 하는데  11개월간 학원수강료 납부 하느라고 몇년전 돌아가신 우리아버지 등골이 많이 휘어지셨을것 같다.

      그러한 아버지의 희망대로   군인고등학교(군인 자녀를 위해 국방부에서 설립하였으나 현재는 일반 사립고로 전환되어 용산구 이촌동으로 이전되었다고 들었음)에  다시 도전했으나 또 떨어져 버리고

      후기 고등학교  입시를 치러  용산구 보광동에 있는  Osan66회로  졸업후 서울 중심부는 전혀 들어와 보지 않다가

49년만에 3.1빌딩을 보면서 

      돌아가신 아버지께 죄송스러움이 가슴깊이 사무친다.

  

 

 

 

 

 

 

 

 

 

 

메기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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