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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있는글

*코쓰모쓰* 2011. 6. 26. 17:42

 

1991년도였던가 XX사단 훈련병이었  난 ,

군대사회를 대한민국 사회의 자그마한 축소판이라 생각하면서

대한민국에서 선두를 가야 한다는 생각에

정말 최선을 다하는 군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군대의 화장실도 맨손으로 청소를 했고,

누구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훈련병중 1등을 했고 군에서 누구보다 더 앞장섰습니다.

퇴소식때 사단장의 1등 포상을 받으면서 일주일의 포상휴가도 나왔습니다.

별2개가 있는 시계도 포상으로 받았습니다.

그런데 군생활은 그렇게 록록하지 않았습니다.

돈과 빽이 지배하는 군대사회!~~

그런 큰 벽에 부딪이며 혼자 버거운 군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혼자서 큰 벽을 부수며 살아야 했으니까요............

더군다나 아비규환이었고.말년휴가쯤이었던가

난 그냥 반항을 했습니다.

그 반항이 어머니께 휴가비를 무조건 많이 받아내는것이었습니다.

전역후 10년쯤 지나 알게되었던 휴가때 반항으로 받아낸 휴가비 20만원은

우리가족의 쌀 값이었습니다.

가족들이 먹고 살아야 하는 쌀값을

그저 반항하는 내가 어머니께 받아갔던 것이었습니다.

아니 받아간것이 아닌 빼앗아 갔던것이였습니다.

 

20년이 지난 어느날 어머니와 옛날 이야기를 하면서 소주잔을 기울일때

어머니는 쌀을 사려고 모아두었던 쌀값을 포상휴가 나왔던 내가

강제로 내놓으라며 가져갔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며칠전 먹고 살만한 지금 00대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가

갑자기 20여년전 쌀값 생각이 났습니다.

부끄럽고 죄송했습니다!~~~~

 

책을 덮고 아내에게 받은 용돈으로

그때 쌀값 이자라도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불현듯났습니다.

그래서 책을 싸 접고 시골 어머님께 갔습니다.

30만원의 돈을 찾아 어머니를 모시고 00에서 젤 맛난 곳을 찾았습니다.

 

우가촌 한우집!~~

 

얼마안되는 이자를 드리고 어머니께 소주 한잔을 사드리며

20년전의 죄스러움을 반성하며 사죄드렸습니다.

 

결국 어머니의 눈시울은 빨개졌습니다.......저두 함께.......

빗나가지 않고 이렇게 성실하게 살아온 못난 아들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자를 드리면서 원금상환은 언제해야 하는지 막막했습니다.

그래도 원금은 꼭 갚아야 함을 가슴깊이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와 함께 소주와 맛난 한우를 먹었습니다.

 

지금의 절 만들어 주신건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는 가장의 역할을 하면서 큰 산이 되셨고, 큰 산이 되기위해 남자도 이기지 못하는 미나리를 짊어지고 00시장을 누볐습니다.

 

내가 지금 바른생활을하고있는것은  미나리를 짊어지고 00시장을 누비셨던

어머니 때문입니다.

바른생활을 하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명심보감,공자,맹자의 고귀한 말씀을 다 새기진 못해도

당시 산같은 미나리 2,3개를 이고,짊어지셨던

어머니의 세파의 힘든 삶에 대한 저항은 잊을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와 20년전의 암울한 이야기를 하며 소주를 마시면서

그때의 감사함에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살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감사합니다...어머님의 은혜.....................!~~

 

힘들고 지칠때 어머님의 당시 저항은 저를 깨워줍니다.

더 열심히 살아서 우릴 지켜주신 당신의 뚝심의 기개가 헛되지 않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  XX님의  글중에서